요약
돌멩이, 씨앗 등을 던지고 받는 공기놀이와 유사한 형태의 놀이는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나라에서 볼 수 있다.
한 곳에서 세계로 전파되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전 세계적으로 자생적, 독립적으로 발생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해외의 기록
그리스 로마 시대 시인 아리스토파네스(서기전 445~380)의 기록에서 '공기놀이를 여자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놀이'라고 서술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기록
1690년 사역원에서 신이행이 중국어의 발음과 뜻을 한글로 풀이한 사전(중국어 사전)인「역어유해(譯語類解)」, 이익(1681~1763)이 지은「성호전집(星湖全集)」, 조선 실학자 이덕무가 1755년에 저술한「사소절(士小節)」, 이규경(1788~1863)이 쓴「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조선 1920년에 완성된 최영년의 시집「해동죽지(海東竹枝)」, 편자 및 편년을 알 수 없는 조선의 시문집「무명자집(無名子集)」,「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등에 기록되어 있다.(하단 논문 내용 참조)
공기의 어원
공기의 옛 한글 표기는 '공긔'이다. 순우리말을 한자의 발음으로 빌린 취음 표기인지, 바둑돌을 들어 올린다는 한자어 공기(拱(손을 마주 잡다, 팔짱끼다 공) 棋(바둑 기))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한자라고 하더라도 중국에서 들어온 놀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사료를 통해 삼국시대나 더 오래전부터 우리나라에는 돌멩이를 던지고 받는 놀이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피드공기는 역사 깊은 공기놀이를 현대 기술을 바탕으로 기록경기로 재해석한 전세계인이 즐길 수 있는 뉴스포츠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논문을 확인하세요.
발췌 논문
유지은(2022). 놀이중심 교육과정에 기초한 전통놀이 사례연구 : 공기놀이를 중심으로서울여자대학교 교육대학원 유아교육전공 석사학위논문
II.이론적 배경
4. 공기놀이
1)공기놀이의 기원
공기놀이는 밤톨만 한 돌 5개, 또는 그 이상의 돌을 손으로 던지고 받는 어린이 놀이로 전승이 강한 전통놀이이다. 하지만 공기놀이는 윷놀이, 연날리기, 팽이 등의 전통놀이와 다르게 옛 문헌 자료나 기록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 그 이유는 놀이의 시작이 어른에서 시작된 놀이가 아니라 어린이에서 시작된 놀이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전통놀이는 고대부터 다양한 신을 모시고 굿을 하며 음악과 춤과 놀이를 즐긴 문화에서 시작하여 오늘날에는 신앙심이 약화하고 놀이만 전해져 내려왔을 가능성이 크다(문미옥 외, 2004). 스튜어트 컬린(1895)도 대부분 전통놀이에 주술적 요소가 담겨 있어 이를 기록하는 과정에서 놀이의 유래, 방법이 문헌에 남겨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공기놀이는 순수한 어린이놀이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어린이에 관한 관심이 적었던 시기라 기록이 많이 남겨지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즉 어떤 신앙심에 기초하여 때때마다 행해진 어른들의 놀이가 아니라 저절로 생겨난 어린이놀이이며 어린이에서 어린이로 전승됨에따라 그 구체적인 기록이 남겨지지 않았을 것으로 본다. 정연식(2012)도 우리나라의 옛날 어린이놀이와 관련된 문헌 자료는 많지 않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지금보다 정치, 경제, 사회문화와 같은 것들에 비해 어린이에 관한 관심이 적었기때문이라고 하였다.
문미옥(2016)은 전통놀이의 교육적 가치가 크기 때문에 유아교육 현장에 적용하는 것은 좋은 시도지만 전통놀이를 전통사회의 본래 놀잇감 재료 및 제작 방법,놀이 장소, 놀이 주 연령대와 성별, 놀이의 다양한 규칙과 방법, 변화과정을 유추할 수 있는 근거자료인 문헌 및 구전 자료와 관련된 연구를 간과한 채 상식적인 지식수준에서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거나 연구에 착수하는 것은 전통놀이의 가치를 매우 폄하시킬 수 있다는 위험이 있다고 하였다. 이에 공기놀이와 관련하여 옛 문헌 자료와 근현대 문헌 자료를 종합적으로 고찰할 필요가 있으며 현대에 계승을 위한 보편적인 방법과 전승 방향을 알아보고자 한다.
공기놀이와 관련된 옛 문헌 자료로는 1690년 사역원에서 신이행이 중국어의 발음과 뜻을 한글로 풀이한 사전(중국어 사전)인「역어유해(譯語類解)」, 이익(1681~1763)이 지은「성호전집(星湖全集)」, 조선 실학자 이덕무가 1755년에 저술한「사소절(士小節)」, 이규경(1788~1863)이 쓴「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조선 1920년에 완성된 최영년의 시집「해동죽지(海東竹枝)」, 편자 및 편년을 알 수 없는 조선의 시문집「무명자집(無名子集)」,「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이 있지만, 안타깝게도 자세하게 기록이 되어있지 않고 공기놀이에 대한 언급만 있을 뿐이다.
이후 근현대 문헌 자료로는 미국의 인류학자 스튜어트 컬린이 1895년에 중국·일본과 비교하여 정리한「한국의 놀이」, 일제 강점기인 1936년에 무라야마 지준이 조선의 향토 오락을 조사하여 정리한「조선의 향토 오락」, 1964년에 도유호 외 북한학자가 쓴「조선의 민속놀이」, 민속학자 심우성(1980, 1996)의「우리나라 민속놀이」, 유안진(1981)이 조사하고 정리한「한국 고유의 아동 놀이」, 인류학자김광언(2004)의「동아시아의 놀이」를 참고하여 공기놀이의 기원과 방법을 살펴보며 통합적인 고찰을 하고자 하였다. 먼저, 공기놀이가 기록되어있는 옛 문헌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문헌명 | 내용 | 국역출처 |
역어유해 (譯語類解) | 요지아(要指兒) 공긔노다 | 김광언 「동아시아의 놀이」 |
성호전집 (星湖全集) | 내 평소에 유가(儒家)의 사업을 하겠다고 스스로 나서지 않았기 때문에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을 하였고, 이는 마치 어린애들이 공깃돌을 가지고 놀거나 모래 위에 그림을 그리고 놀듯이 한 것에 지나지 않았네. 그 결과의 득실이야 필경 한번 웃고 말 일에 불과한 것인데, 사람들이 도리어 이것을 들어서 비판을 하고 있 으니, 또한 너무 지나친 일이 아닌가. | 한국고전 종합 DB |
사소절 (士小節) | 어린이들은 거개가 글 읽기 싫어하고 어른이시키는 일 하기는 창피스러워하면서, 모든 오락에 있어서는 권하지 않아도 잘하고 가르치지 않아도 열심히 한다. 장기(象戱)·바둑(圍棋)·쌍륙(雙陸)·골패(骨牌)·지패(紙牌)·윷놀이(擲柶)·의전(意錢)·종정도(從政圖)놀이·돌공던지기(擲石毬)·팔도행성(八道行成)31) 등을 모두 환히 알면, 부형과 벗들은 재주가 있다고 그를 칭찬하고 잘하지 못하면 모두 그를 조소하니 어찌 그리도 고질스러울까? | 한국고전 종합 DB |
오주연문장전산고 (五洲衍文長箋散稿) | 우리나라에는 아이들이 둥근돌을 가지고 노는 놀이가 있어 이것을 <공기(拱棋)>라고 한다. 둥근돌을 공중에 던져 손바닥으로 받고 이미 받은 것을 솥발형태로 만드는 것을 <솥발공기(鼎足拱棋)>라고 한다. | 한국고전 종합 DB |
해동죽지 (海東竹枝) | 한 알이 오를 때 네 알은 엎드리며 번갈아 오르고 내리는 모양 분주하다. 솜씨가 뛰어나 한 번의 실수도 없는 것이참으로 오와룡(五瓦龍이) 구슬 어르는 듯하다. | 김광언 「동아시아의 놀이」 |
무명자집 (無名子集) | 세상에서 노름이라 하는 것이 그 이름이 한두가지가 아니어서 바둑〔圍棊〕, 장기〔象戲〕, 쌍륙(雙六), 골패(骨牌), 윷놀이〔柶戲〕, 종정도(從政圖), 투전(鬪牋) 및 그 밖의 자잘한 것에 이르기까지 이루 헤아리기 어렵다. 그리고 옛 책에 기록된 탄기(彈棊), 격오(格五), 효로(梟盧) 등의 종류는 이제는 전하지 않는데, 모 두 일상의 사업을 내팽개치고 노름에 빠져 생업을 도모하지 않고 세월을 보내는 도구이다. 그러나 또 승부를 걸어 돈을 따는 이로움이 있으므로 방탕한 자들과 무뢰배들이 모두 여기에 달려들어, 심성을 상하고 정신을 피폐시키고 생사를 잊으니, 한탄스런 일이다. * 탄기(彈棊) : 바둑알을 손가락으로 튕겨 승부를 겨루는 놀이의 일종이나, 정확한 방법은 미상이다. 성호(星湖) 이익(李瀷)은 우리나라의 공기놀이와 복건성의 부녀 자들이 두 자 네 치 되는 탁자에서 바둑알 다섯 개를 늘어놓고 손으로튕기며 겨루던 탄자(彈子)놀이가 탄기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하였다. 《星湖僿說권6 萬物門象戱》오주(五洲) 이규경(李圭景)은 바둑과는 항목을 달리하여 설명하였는데, 한나라 성제(成帝)가 축국(蹴鞠)을 즐기므로 혹시 몸을 상할까 하여 유향(劉向)이 탄기를 만들어 바쳤다고 하면서 여러 서적에서 다양한 학설을 인용하여 설명하였다. 《五洲衍文長箋散稿人事篇技藝類雜技戲具辨證說》 | 한국고전 종합 DB |
조선왕조실록 (朝鮮王朝實錄) | 숙종 7년 신유(1681) 2월 22일 인경 왕후의 지문의 일부이다. 〈김만기는〉일찍이 병조 판서(兵曹判書)ㆍ대제학(大提學)이 되었고, 군수(郡守) 한유량(韓有良)의 딸에게 장가들었다. 참판(參判)과 생원(生員)을 모두 충청도(忠淸道) 회덕현(懷德縣)의 정민리(貞民里)에 장사(葬事)지냈는데, 술인 (術人)이 말하기를, ‘반드시 덕행(德行)이 있는 임사(任姒) 같은 사람이 태어날 것이다.’ 하였는데, 왕후(王后)께서 과연 숭정(崇禎) 기원(紀元) 34년 신축년 9월 초3일 을묘 인시(寅時)에 경사(京師) 회현방(會賢方) 사제(私第)에서 태어나셨다. 그런데 이미 태어났으나, 울음소리가 끊어져 희미하므로, 집안 사람들이 혹시나 하고 염려하였는데, 의원이 말하기를, ‘다친 곳은 없고 성질(性質)이 그러합니다.’ 하였다. 이미 말을 배워서는 말을 가볍게 꺼내지 아니하나, 꺼내면 반드시 이치가 있었다. 그리고 보행은 더디고 느렸으며, 함부로 뜰 계단을 내려가지 아니하였고, 스스로 타고난 존귀(尊貴)함이 있었다. 동배(同輩)와 서로 만났을 때 곁에 있는 자들이 병아리를 희롱하거나 공기놀이를 하거나 배[梨]ㆍ밤[栗]을 다투거나 엿과 떡을 갖거나 간에 평소 꼼짝도 않은 채 단정히 앉아 보 지 않은 것같이 하였으며, 함께 먹을 때에는 반드시 기다렸다가 모두 모인 후에야 먹었다....(생략)... 나이 7, 8세가 되자, 집안에 깊숙이 들어앉아 나가지 아니하고 예(禮)를 익혀 10세가 되니, 또 조달(早達)하였다. | 한국고전 종합 DB |
공기놀이의 첫 시작이 언제인지 알 수 있는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1690년 중국어 사전에 기록된 놀이 명칭인 ‘공긔놀이’가 공기놀이의 어원으로 확인할 수 있다.「역어유해(譯語類解)」는 중국어를 우리나라 말로 번역한 것으로 공기놀이의 어원이 ‘공긔놀이’였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하지만 공기놀이가 중국에서 시작된 놀이로 단정 짓기에 무리가 있다. 정확한 문헌 자료는 없지만 고구려 벽화에 공기놀이로 추정할 수 있는 그림이 있다. 5세기 후반의 것으로 추정 되는 고구려 수산리고분벽화(修山里古墳壁畵)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수산리고분벽화(修山里古墳壁畵)의 주제는 생활풍속이었는데 서쪽 벽에 다섯 개의 공기와 같은 돌멩이를 가지고 올려 던지면서 재주를 부리는 모습이 실감 나게 그려져 있는 것을 통해 공기놀이의 기원을 유추해볼 수 있다(한국 콘텐츠 진흥원; 편해문, 2003). 이 벽화를 통해 공기놀이의 시작이 최소한 삼국시대부터 시작되었음을 짐작해볼 수 있으며 현재 고구려 영토인 중국에 남았다가 전해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수산리고분벽화
이후「성호전집(星湖全集)」,「사소절(士小節)」,「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 나온 공기놀이의 기록을 통해 공기놀이의 대상이 어린이였음을 알 수 있다.
「사소절(士小節)」에 나온 돌공던지기란 돌로 공을 만들어 연달아 던지는 놀이, 지금의 공기이다(정미식, 2021). 또 한 가지 눈여겨볼 만한 것은 ‘오락에 있어서 는 권하지 않아도 잘하고 가르치지 않아도 열심히 한다.’라는 대목이다. 이는 공기놀이가 오락의 한 종류로서 가르치지 않아도 ‘재미’에 의해 즐긴 놀이임을 알수 있다.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와「해동죽지(海東竹枝)」는 공기놀이에 대한 기록이 가장 길게 기록된 문헌 자료로 공기놀이의 방법을 유추해볼 수 있다. 「무명자집(無名子集)」에는 여러 가지 노름이 나오는데 공기놀이가 ‘탄기(彈棊)’에서 시작되었다고 추정하고 있는 자료이다. 하지만 공기놀이가 오늘날의 알까기와 비슷한 모습을 보이는 탄기(彈棊)에서 유래한 것인지 정확하지 않지만, 이 자료를 통해 공기놀이가 던지고 받는 단순한 놀이에서 시작되었음을 추정해볼 수 있다.
한편, 두피디아사전에 따르면 공기놀이란 “작은 돌을 일정한 규칙에 따라 집고받고 하는 놀이”로 세계 각지에서 옛날부터 보급되었다고 나와 있다. “외국에서 는 팥·쌀 등을 조그만 주머니에 채운 공기 5~7개를 1조로 하여 이것을 연속적으로 공중에 던져 올리고 떨어지지 않게 양손이나 다른 한 손으로 받아 던지면서 놀이했다.”라고 기록되어있다.
다른 말로 너클본(knucklebone)이라는 뜻이 있으며 이는 “속임수, 다섯 돌, 잭또는 잭스톤”으로 알려져 있다. 너큰본(knucklebone)이라는 이름에서 볼 수 있듯 이 뼈를 사용하는 게임으로 고대 그리스에서 파생되었으며 다른 문화권에서는
돌, 조개, 씨앗, 큐브를 포함한 다른 재료를 사용해서 놀이한다고도 한다(김성미,2016). 공기놀이가 고대에서 시작하여 세계 여러 나라에서 비슷한 놀이로 존재했고 방법이 비슷함을 알 수 있는 자료들이 있다. 김광언(2004)에 따르면, 공기놀이는 그리스 로마 시대에도 있었으며 그리스 시인 아리스토파네스(서기전 445~380)는 여자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놀이라 하였다고 한다. 그는 그리스 신화에 제우스가 사랑의 여신 에로스에게 공기를 주었다고 기록되어있다고 하였으며 폼페이 유적에서 나온 조각 그림에 보이는 것을 미루어 짐작해볼 때 로마 시대에도 널리 퍼졌다는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또한 Pieter Bruegel이 1560년에 그린 ‘아동의 놀이’에는 240여 명의 아이가 집 앞 넓은 공터에 앉아 놀이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대부분 아이가 자신의 신체만을 사용하여 놀이하고 있고 죽마, 팽이 진흙, 굴렁쇠, 동물의 뼈로 만든 공기, 배럴 통, 빗자루, 요요 등의 놀잇감으로 놀이하고 있었다고 한다(김명순,
2019).
손성태(2016)는 미국 학자 홀메스가 1908년 애리조나주의 인디언 여자아이들이 공기놀이하는 모습을 기록한 것을 분석한 결과 우리의 공기놀이와 거의 비슷한방법으로 놀이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거의 전 세계적으로 공기놀이가 존재했지만, 돌멩이만 있으면 던지고 받는 놀이를 할 수 있다는 상식적인 관점에 비추어 볼 때 공기놀이의 기원에 대한 결론은 일방적인 문화유입설이 아니라 각 문화권에서 자생적이고 독립적으로 발생하여 진 것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우리나라는 옛 문헌과 벽화를 통해 공기놀이의 기원이 5세기경이라고 결론 내리는 것은 문헌 자료상의 기원이며 실제 공기놀이의 기원은 아직 확정할 수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상의 자료들을 토대로 공기놀이의 기원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우리나라에서 시작은 삼국시대나 아주 더 오래전부터라 할 수 있으며 주로 어린아이들이 돌멩이를 던지고 받는 놀이로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기원 자료를 통해 어린아이들이 돌멩이만 있으면 놀이할 수 있다는 시사점을 받을 수 있고 현대의 유아들도충분히 즐길 수 있는 놀이임을 알 수 있다.